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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소식

분류없음 2011/08/04 23:20

 



일생 주를 사랑하고 진리를 수호하다


모세목사님이 지난 달 94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분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정부조직에 속한 삼자교회를 이끌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면 좋은 아파트에, 자동차 운전사까지 제공되고, 자녀들의 장래도 보장되는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고 24년 동안 감옥에 갇혀 계셨습니다. 그들은 목사님에게 팔목을 꽉 조이게 수갑을 채우고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도록 강요하며 고통을 가했습니다. 꽉 조인 수갑은 잡아당길 때마다 피부조직을 파고들어 뼈에 닿았습니다. 상처 난 부위가 수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오르면 수갑을 앞 뒤로 잡아 당겼습니다. 그 고통은 실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러한 고통을 가하면, 한 사람은 허리를 휘게 한 채 채찍질을 하고, 한사람은 대나무로 무릎을 때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고문을 아침에 4시간, 오후에 5시간, 저녁에는 6시간에서 8시간까지 73일 동안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라는 자백을 하도록 가한 핍박이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목사님은 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린 양의 피와 그들의 증거하는 말로 이겨냈습니다.
이 분이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감옥 안에서 죽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 아들아,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내 아들아,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내 아들아,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목사님은 그 밤에 하나님께서 사랑을 보여주신 후부터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간수들이 계속해서 그 분을 괴롭혔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24년 후, 감옥에서 나온 그 분은 하나님 품에 안길 때까지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어린 양의 피로, 그를 증거하는 말씀으로 이겨냈습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이 말씀이 여러분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한 대답입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말씀, 용기, 힘, 믿음 등)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 1918년 출생.
  • 1940년대 화북신학원을 졸업 한 뒤 ‘전도회간(布道會刊)’, 1955년 ‘성가오(聖膏, 성스러운 기름)’ 잡지 편집장역임.
  • 기독교삼자회 초대 주석 오야종(吳耀宗)으로부터 삼자회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한 이유로 1956년 5월 28일 체포.
  • 1978년 형기가 공식 만료되었지만 석방되지 못하고 20년 이상 형기를 채운 60세 이상은 출소할 수 있다는 등소평(鄧小平)의 지시에 따라 24년 만에 석방.
  • 출옥한 뒤 또다시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80년대와 90년대 두 차례 체포돼 각각 3개월 구치소에서 지냄.
  • 2011년 6월 27일 소천.


Posted by 예빈아빠^^!


오늘 하루의 감사!

오늘 Q,T중 기도의 범주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빌립보서 4:6)  사도 바울은 기도해야 할 일이 ‘모든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기도와 간구’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제 그렇게 좋지도 않은 무쇠자전거를 도둑맞았습니다.
자전거를 잊어버린 것이 3번째입니다.
참~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이 자전거 도둑이 어떤 인생을 살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리 딸아이가 하나님이 더 좋은 것 주실거야라는 말을 했고, 그 걸 듣는 순간, 불쾌감을 사라지고,
마음도 편안해 졌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며,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으면 좋겠고, 그런 인생을 살도록 노력 해야 겠습니다.
출근길에 관악산이 보입니다. 벌써 가을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해 가는 자연의 모습속에,
하나님의 경외감이 넘칩니다.

오늘 문듯 장인 어른이 투병 중에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다시 이 햇빛을 볼 수 있을까?
본인의 차에 올라서, 다시 이 차의 시동을 걸수 있을까?
그 말씀대로 다시 가을의 따뜻한 햇빛과 차의 시동을 다시 걸지 못하시고,
이생의 삶을 마쳤습니다.

출근길의 따뜻한 가을 햇살에 감사하며,
하루의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Posted by 예빈아빠^^!

뉴스 앤조이 보도 내용입니다.

이제 목사님은 나단 선지자의 모습으로 있으시면 좋겠다는 개인 생각 올립니다.

목사 9000명 "촛불 너무 뜨거웠다. 이제 꺼라"
장로 대통령 소속 교단 목사들 주도적 참여...1주일 전 촛불시국기도회 무색
입력 : 2008년 07월 10일 (목) 04:12:23 [조회수 : 822] 이승균 ( seunglee

개신교 목사 9000명이 서명한 '촛불집회 중단 호소문'이 7월 10일 오후 2시에 발표된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기독교사회책임이라는 단체다. 이 단체 대표는 서경석 목사. 서 목사는 이미 광화문 한복판에서 조선족 교인들을 데리고 촛불집회 반대 시위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개신교계는 불과 1주일 전에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 시국기도회를 주최했다. 비록 진보 진영에서 주도했다고는 하지만 목사 1000여 명이 참여한 당시 시국기도회는 개신교 입장에서 촛불집회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행사였다.

그런데 이제 목사 9000명이 돌연 ‘촛불을 꺼야 한다’고 나선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우선 서경석 목사 개인이나 기독교사회책임의 능력과 영향력만 가지고 불과 1주일 사이에 목사 9000명의 서명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사회책임이 미리 공개한 호소문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의문이 풀린다. 참여자 맨 앞의 이름은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 김준곤 목사가 차지하고 있다. 김 목사는 나이도 많지만 평생 반공과 보수 노선을 걸어왔다는 면에서 이번 호소문의 맨 앞에 등장하기에 손색없는 인물이다.  

김 목사 뒤를 이은 인물은 이광선 목사(신일교회). 이 목사는 김준곤 목사에 비해 일반 시민이나 평신도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그러나 이 목사는 차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노리는 인물로 알려질 정도로 교계 내에서는 거물급에 속하는 목사다. 현재 한국찬송가공회 이사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갖고 있고, 지난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총회장을 지냈다.

이번 호소문에서 이광선 목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그 다음 순서로 조용기 목사와 김선도 목사 등이 올라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김준곤 목사 다음으로 조용기 목사와 김선도 목사의 이름이 올라야 정상이다.

이광선 목사가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광림교회라는 초대형교회 원로목사 두 명을 제칠 수 있는 힘은 그가 이명박 대통령을 배출한 교단인 예장통합 총회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예장통합은 교단이 배출한 대통령을 가장 위협하는 촛불을 끄기 위해 이번 호소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 목사는 그 특유의 보스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덕분에 일약 호소문 순위 넘버2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이 목사는 통합교단 내에서 확실하게 보스 기질을 발휘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그는 2007년 총회장 재임 시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면서 스스로 삭발을 감행했다. 이 목사가 삭발을 감행하자 당시 교단 산하 주요 교회 목사들까지 줄줄이 삭발을 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번 호소문에 서명한 예장통합 측 목사 가운데는 당시 이 목사를 따라 기꺼이 머리를 깎았던 의리파들도 포함되어 있다.

기독교사회책임이 소위 주요 인사들이라고 공개한 서명파 목사들은 모두 38명이다. 이중 예장통합 측 소속 목사는 이광선 목사를 포함해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이승녕 목사(새벽교회) 강신원 목사(노량진교회)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서경석 목사(조선족교회) 조재호 목사(고척교회) 등 12명이다. 이들은 서경석 목사를 제외하고 모두 수도권에 위치하는 내노라는 규모의 교회 담임목사들이다.

이중 이수영 목사와 이성희 목사 등이 이광선 목사와 함께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 삭발에 동참했다. 또 박종순 목사는 이광선 목사 이전에 총회장을 지냈고,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현 부총회장으로 오는 9월 총회에서 총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예장통합은 촛불집회가 잠시 수그러드는 틈을 타 이명박 대통령을 코너에서 구출해 내는 전위대 역할을 해내기로 작정한 듯하다.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어버리는 심정으로 말이다. 기독교사회책임은 대표인 서경석 목사가 통합 측이라는 연유로 자연스럽게 손발이 맞았을 것이다.

또 조용기 김선도 하용조 엄신형 목사 등은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시국 관련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당연히 누구보다 앞장서서 촛불에서 대통령을 보호해야 할 사명감을 느낄 만한 사람들이다. 

결국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예장통합 측과 보수 대형교회 목사들의 두터운 보호막 속에서 촛불이 완전히 사그라지는 상황을 지켜볼 여유를 갖게 될 지도 모른다.

다음은 기독교사회책임이 미리 공개한 서명 목사 명단이다.

김준곤 목사(CCC총재), 이광선 목사(신일교회),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김선도 목사(광림교회),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최성규 목사(순복음인천교회),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엄신형 목사(중흥교회),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김홍도 목사(금란교회),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정필도 목사(수영로교회), 조용목 목사(은혜와진리교회),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이승녕 목사(새벽교회), 김성광 목사(순목음강남교회), 신신묵 목사(한강중앙교회), 유재필 목사(순복음노원교회), 강신원 목사(노량진교회), 김요한 목사(국제신대원), 임택권 목사(전아세아신대총장), 이태희 목사(성복교회),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 이필재 목사(갈보리교회), 서경석 목사(조선족교회), 나성균 목사(성복중앙교회), 송기성목사(정동교회),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안용운 목사(온천교회), 이강호 목사(봉천교회), 조재호 목사(고척교회)

     관련기사
· 김준곤·조용기·하용조 목사 촛불집회 중단 나서
Posted by 예빈아빠^^!
들꽃을 통해 우리에게 편지를 쓰시는 하나님
입력 : 2008년 06월 11일 (수) 10:25:50 [조회수 : 205] 김민수

   
 
  ▲ 지친 삶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들꽃 앞에 앉아 두런두런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시금 삶의 활력을 얻고, 그들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설교 단상들과 삶의 지혜를 얻곤 합니다. (사진제공 김민수)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시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있지만 그 세미한 음성들을 놓치지 않고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사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다 보면 너무도 분명하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듣질 못할 뿐 아니라 때론 자기의 입맛에 맞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 어느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모르고 짓는 죄가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알고 짓는 죄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지만 모르고 짓는 죄는 회개할 기회도 없을 뿐 아니라, 죄에 대한 자각도 없이 사명감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가거든요. 이런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신앙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통로가 필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그 중에서도 작은 풀꽃들을 통해서 그 분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지친 삶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들꽃 앞에 앉아 두런두런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시금 삶의 활력을 얻고, 그들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설교 단상들과 삶의 지혜를 얻곤 합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듯 고막을 통해서 들려지는 소리는 아니지만 작은 들꽃들을 보면서 얻는 수많은 단상들을 저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붓꽃의 종류가 많은데 아마도 붓꽃 중에서는 가장 작은 붓꽃이 바로 이 등심붓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제공 김민수)  
 
그 작은 꽃들을 통해서 희망을 보고, 시대의 징조를 보고, 신앙인으로서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인지 깨달아가면서 작은 들풀 하나라도 허투루 지으시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저 작은 들풀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시고, 돌봐주시니 손수 지으시고 당신의 영을 부어주신 인간은 얼마나 더 사랑하실까 생각하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견딜만한 아픔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고난 외에는 주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고난의 시간도 이미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등심붓꽃은 남도지방과 제주도의 들판에서 자라는 작은 꽃입니다. 붓꽃의 종류가 많은데 아마도 붓꽃 중에서는 가장 작은 붓꽃이 바로 이 등심붓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붓꽃, 각시붓꽃, 노랑무늬붓꽃, 넓은잎각시붓꽃, 난쟁이붓꽃 등 수없이 많은 붓꽃 중에서 등심붓꽃은 가장 작으니 붓 중에서도 가장 작은 세필을 보는 듯합니다. 세필은 세세한 그림을 그리거나 서신과 같은 작은 글을 쓸 때 사용합니다. 꽃을 피우기 전의 모습이 붓을 닮아 ‘붓꽃’이라는 이름을 얻은 꽃, 마치 그들을 꺾어 그림을 그리면 그들이 품고 있는 물감이 저절로 수채화를 그릴 것만 같은 모양새입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요즘 제주도에서는 흔하디흔한 꽃 중의 하나가 등심붓꽃입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너무 흔한 꽃이지만 육지에 사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귀한 꽃이지요. 오랜만에 찾은 제주도의 풀밭에서 만난 등심붓꽃, 제주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떨어져있다 만나니 얼마나 귀한지, 그 때 그를 더 사랑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흔하디흔한 것들’에 대해 명상을 했습니다.

   
 
  ▲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지만 요즘 제주도에서는 흔하디흔한 꽃 중의 하나가 등심붓꽃입니다. (사진제공 김민수)  
 
흔하디흔한 것들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아주 특별한 것에 사람들은 혹하지만 그것은 너무 귀한 것이라 그것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것들로 인해서가 아니라 흔하디흔한 것들로 인함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흔하디흔한 것은 소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인의 것이 됩니다. 예를 들면 호흡이 그렇지요. 숨을 쉬지 못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들숨날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간이 공기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호흡기의 문제로 숨이 가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호흡을 한다는 것, 공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이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오늘 날에는 이 공기조차도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오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공기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인간이 배출한 미세한 오염물질들을 공기가 품고 있는 것이지요. 그로 인해 많은 질병들도 발생을 합니다. 오염된 공기, 그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고, 걸어가야 할 길을 볼 수 있을 터인데 사람의 욕심은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등심붓꽃을 통해 하나님은 제게 이런 편지를 쓰셨습니다.

   
 
  ▲등심붓꽃을 보면서 늘 내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 그래서 감사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모든 것들을 돌아봅니다.  (사진제공 김민수)  
 
‘흔하디흔한 것들, 매일매일 만나는 것들을 더 사랑해라. 너에게는 너무 흔해서 발에 밟히는 것일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이루지 못할 소원일 수도 있다. 내가 오늘을 살고 있는데 그 날 조차도 내 일생의 흔하디흔한 날 중 하나가 아니라 어제 죽은 사람의 이루지 못한 소망의 날이니 오늘 네가 만나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라.’

등심붓꽃을 보면서 늘 내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 그래서 감사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모든 것들을 돌아봅니다. 그것을 돌아보면서 들꽃을 만나기 전보다 조금은 더 깊어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꽃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다양하지만 내게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들꽃이라 고백하는 것이지요. 오늘도 하나님은 시절을 따라 꽃을 피게 하시고 그 안에 등심붓꽃으로 쓰신 듯 내게 편지를 새겨놓으셨습니다. 그 편지는 제게만 쓴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통해 하나님의 편지를 받고 계시는지요? 그런 것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행복하지 않을까요?

김민수/ 목사

Posted by 예빈아빠^^!
아침 일찍 나의 핸드폰이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긍휼사역으로 돌봐주고 있던 이집사님 어제까지 아니 불가 몇 시간 전에 이땅에 살아 계셨던
집사님이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셨다는 메시지 였습니다.
대,소변을 봐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이빨을 닦아드리면서, 일주일에 한 두번씩 있었던, 만남도
이제는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가난하고, 삶에 지친 몸, 병든 몸, 돌보는 사람도 없는 몸으로 그렇게 삶을 마치셨습니다.
만약 그 분이 구원의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면, 저는 분노하며, 괴로워했을 것 입니다.
세상에서 천대받고, 지친 몸으로 삶을 살았을지는 모르지만, 주님의 품안에 영생을 누리고 계실
집사님을 생각하면, 큰 위안을 받습니다.

삶과 죽음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 옆에 있고, 이 글을 읽는 분 옆에 있습니다.
구원자로 주님을 영접하고, 죽음의 준비를 마무리하고, 하나님이 주신 삶을
마음 것 영위 하시길 ....
Posted by 예빈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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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빈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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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빈아빠^^!

오늘 오인호란 형제 1958년 삶을 마감한 분의 삶을 접하고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존경의 마음으로 여기 옮겨봅니다.

입력:2008년4월22일


아들 죽인 범인 용서한 한국인 부모, 미국인들에게 감동
오인호 기념 장학 사업 지속…이스턴대학 해마다 추모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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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Turn Sorrow into Christian Purpose"(슬픔을 기독교적 소망으로) 오인호 씨의 묘비명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들을 위해 선처를 호소한 오 씨의 부모님이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미주뉴스앤조이 박지호

지금부터 꼭 49년 전인 1958년 4월 25일 금요일 밤 9시경 펜실베이니아대학 주변 해밀턴 거리 36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당시 26세)가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기 위해 집 앞에 있는 우체통으로 다가가는 순간 근처에 숨어 있던 흑인 불량배들이 달려들었다.

11명의 불량배들은 오 씨를 에워싸고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철사가 달린 블랙잭이란 흉기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자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콜라 병을 깨뜨려 몸을 찔렀다. 정신없이 맞은 오 씨는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창밖을 내다본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오 씨는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오 씨가 머물던 작은아버지 오기항 목사의 집을 나선지 5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범인들은 근처 교회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싱 파티 입장료 35센트를 마련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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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범인들이 붙잡혔다. 이들은 근처 교회에서 열리는 청소년 댄싱
파티 입장료 35센트를 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사진 제공 오인호기념코리아센터)
 
 
다음 날 아침 이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일제히 머리기사로 다뤘다. 시민들은 35센트 때문에 사람을 죽인 범인들의 비인간성에
 경악했고, 폭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들의 잔혹함에 분노했다. 신문마다
“cold-blooded”(냉혈한), “brutal”(잔혹한), “heartless”(무자비한) 등의 수식어를 써
가며 범인들을 비판했다. 여론도 들끓었다. 범인들이 비록 청소년들이지만 극형에 처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검찰도 중벌을 내리기로 유명한 검사를 배정했다.
 당시 재판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배심원들도 극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11명
중 3명이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 사건 발생 3일 후에 열린 오인호 씨의
 장례식.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조문객이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가장 오른편에 서 있는 사람이 필라델피아
시장이다. (사진 제공 오인호기념코리아센터)
 
 
시민들은 오 씨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했다. 오 씨의 장례식에 참석한 필라델피아 시장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오 씨의 아버지인 오기병 장로가 한국에서 보낸 편지다. 아들을 죽인 범인들에게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줄 것과, 이들을 위해 가족들이 모금한 돈 500불을 보내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을 승화시켜 기독교적 소망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인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고, 큰 충격과 비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들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과 인간성 마비에 대해서도 슬프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인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를 열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가장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청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희생자 본인과 그의 가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 교육적 빈곤이 살해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은 이들이 석방된 뒤에 직업 교육 및 사회 적응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금을 적립하기로 했습니다. … 이것은 죽임을 당한 이와 죽인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며 우리를 기독교적 사랑과 친교 안에 연결되게 하는 길이라
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다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성령으로 우리의 소망을 밝혔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 국민들과 특히 우리의
피붙이인 아들을 죽게 한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기병(오인호 씨 아버지) 올림.

오 장로의 편지로 미국 사회는 다시 한 번 들썩였다. 당시 언론들은 아들을 죽인 원수를
향해 용서와 자비의 손을 내미는 오 씨의 부모를 주목했다. 5월 2일자 <The Evening
Bulletin> 신문에는 “To Return Good for Evil”(악을 선으로 갚다), “In Ho Oh's Parents
 to Give $500 to Help His Slayers”(아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위해 500불 기부한 오 씨의
부모님)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실렸다. 뉴욕 <Guidepost>도 4면에 걸쳐 오 씨와 그의
가족에 대한 기사를 담았다. 당시 언론들은 “미국에서 500불은 큰돈이 아니지만, 한국
에서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2센트~35센트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오 씨 가족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라며 오 씨의 가족이 보여준 용서에 대한 진정성을 높이 샀다.
 

   
 
  ▲ 오인호 씨의 아버지 오기병 장로(왼쪽)와 어머니 한신현 권사(오른쪽). (사진 제공 오인호기념코리아센터)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유가족을
 위해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오 씨의 시신을 한국으로 송환
키로 했다. 그러나 오 장로는
오히려 아들을 미국 땅에 묻기
원했다. 아들의 무덤을 통해
미국 국민들이 교육적 빈곤이
청소년 범죄의 일차적인 원인
임을 자각하고, 청소년 교육의
책임성을 절감토록 하기 위해서다.

오 씨의 죽음 이후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오인호 기념 장학금’을
마련해 장학금을 모금했다.
그 장학금으로 두 명의 한국 학생
이 펜실베이니아대학에 입학해서
박사 학위 과정까지 마쳤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들도 160만
 불이 넘는 기금을 모금해
숭실대학교에 전달하고,
일부는 적십자사에 사회복지기금으로 기부했다. 1962년에는 미국 장로교회가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An Epistle from Koreans’(한국에서 온 편지)라는 영화를 만들어 5,000곳이
넘는 미국 교회들에서 상영했다. 범인 중 한 명은 훗날 오 씨의 부모님에게 용서를 구
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오 씨와 함께 살았던 작은아버지 오기항 목사는 사건 이후 이 비극을 어떻게 기독교적
소망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과도 상의했다. 한국에 있는 오 씨의 가족들은 범인들을 돕고자 했으나 흑인 커뮤니티
에서 이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다. 결국 가족들이 사재를
 들여 ‘오인호 기념 코리아 센터’를 건립하고 어떤 형태로든 오 씨의 가족들이 보여준
사랑의 정신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오 목사 부부는 월세가 100불 정도 하던 낡은 집을 구입해서 개조했다. 그곳에서 미국
인들과 문화 교류를 가졌다.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함께 어울리며 교제하는 친선 프로
그램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이 모임은 기도 모임으로
발전해 80년대 후반까지 30여 년간 이어졌다.

센터는 또 당시 극소수에 불과했던 재미 한국인들을 섬기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이었기에 유학생들이나 교포들의 생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당장 생활비가 없거나, 급한 일을 앞두고 교통편이 없어 발을 굴러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자동차가 없는 유학생들을 위해 교통편을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벌였고, 머무를 곳도 없이 미국으로 건너온 유학생들을 재우고 먹이는 일도 했다.
실수로 임신한 사실을 알고 한국에서 모든 지원을 끊어버려 오갈 데 없었던 여학생을
맡아서 태어난 아기와 여학생을 돌보기도 했다.
 

   
 
  ▲ 센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오 목사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오인호 기념 센터’
는 멈춰있다. 건물은 잠겨 있고, 센터 앞 공터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미주뉴스앤조이 박지호
 
 
70년대에는 한인 1·5세와 2세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열어 한글을 비롯해 한국 문화와 전통을
 가르쳤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이민자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법률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를 펼쳤다. 아시아법률센터를 설치해 한국인뿐 아니라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밀입국하다 적발되어 유치장에 갇힌 중국인들을
위해 영주권 취득을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센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오 목사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오인호 기념
 센터’는 멈춰 있다. 건물은 잠겨 있고, 센터 앞 공터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건물에는 3
0개가 넘는 방이 있지만 나서서 센터를 이끌 사람이 없어 그냥 두고 있다. 얼마 전엔
도둑까지 들어 센터에 있던 물건들을 훔쳐갔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남은 김자영 사모가
가끔 둘러보긴 하지만 몸이 불편해 거동마저 힘들기에 관리조차 버겁다.

   
 
  ▲ '오인호 씨 추모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스턴대학교 도서관에 전시된 오인호
씨에 대한 자료를 읽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 박지호
 
 
오 씨가 펜실베이니아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다녔던 이스턴대학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 씨의 희생과 그의 가족들의 기독교적 정신을 기리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이스턴대학
은 ‘오인호 장학금’을 만들었다. 또 도서관에 오인호 기념 컨퍼런스 룸을 만들어 매년 오
씨가 사고를 당한 4월을 전후해 추모 행사를 가져왔다. 

한인 사회와 교회에서 오인호 씨는 아직도 낮선 이름이다. 그의 가족이 보였던 사랑과 용서
의 정신도 낯설다. 오인호 씨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서울대학교 재학 당시 기독학생협동
관 <협조의 벗>에 기고한 글을 소개한다. 50년 전 한국 교회를 향한 그의 일갈이 아직도
유효한 까닭이다.

   
 
  ▲ 오인호 씨.
 (사진 제공 오인호기념코리아센터)
 
 
“변하는 사회와 시대 속에서 교회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탓함은 그 변함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 변함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까닭에서다. 교회는 믿음과 사랑의 집단이 되고, 사회의 등불과 양심이 되고, 죄악과 불의에 대한 총탄과 방패가 되며, 사회의 복음화와 질서를 위한 남모른 제물이 되며, 빛과 생명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임을 몰각하고 교파와 세력 다툼과 자기기만에 빠져들고 있다. 교회의 존재의의는 내로는 교회 자체의 순결을 꾀하고 외로는 복음 전파에 있다. 어느 교회나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 자체의 이익과 확장만을 위한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서만 노력한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는 믿지 않는 중생하지 못한 인간 그대로의 확대임에 불과하며, 이는 그 변해야 할 심장부의 변화가 없는 교회가 된다."

"그러나 외적인 것보다 먼저 내적인 변화야말로 교회의 성화와 사회의 복음화와 및 교회의 세속화와 사회의 반신화를 막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 일은 어느 그룹이나 신학자와 교역자의 독점사는 결코 아니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지워진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신학자나 목사가 되라고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자 사랑으로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했으니 우리들은 먼저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 되며
사랑의 화신이 되어 기도와 연구와 실천에 온 힘을 다하는 벗이 되고 그릇된 꿈과 환상
을 버리고 실천과 위기에서 살며,
자체가 요나의 이적 십자가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예빈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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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빈아빠^^!

제가 존경하는 집사님과 같이 1년 이상 교회에서 G12 제자반 과정을 수료
했습니다.졸업식때 성도들 앞에서 간증문을 발표하셨는데, 은혜을 같이
나누고져 올립니다.
참고로 이분은 60이 넘은 나이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셨습니다.

세계비전 제자대학 2기를 마치며
집사 함병헌

목동평강교회 등록 후 믿음 생활의 걸음마 단계에 있던 제가 양육반과
중보기도학교등 여러가지의 훈련을 거쳐 제자대학을 시작하였으나,
저의 신앙은 여러 성도님이 아시다시피 어린아이 수준이었고, 생활의 모든
여건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과 목사님,사모님
그리고 여러 지체들의 사랑과 돌봄에 감격하며 은혜를 많이 받았고 기쁨도
따랐으나 훈련을 감당할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앞선 믿음의
쟁쟁한 선배들과 같이 하는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최고의 기도제목이 “하나님 아버지, 졸업만 무사하게
해 주십시오”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자대학 졸업을 하는 은혜
뿐 아니라 제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성장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매주 하시는 강의는 저의 세상저인 가치관과 인생관을 변화시
켰으며, 그토록 갈급했던 진리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제자대학을 통해 저는 저의 존재가치와 정체성을 발견하였으며, 진정 세상
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복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제자대학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부르심에 대해 깨달았으며 제 인생이 가치있는 하나님의 그릇으로
빚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제자대학 한시간 한시간이 너무나 소중했으며
목사님께서도 그 때의 노트들을 기회있는대로 들춰보라 말씀하신 것이 어제
일처럼 감격이 되살아 나곤 합니다.
제자대학 2기생으로 훈련을 받으면서 추억도 많습니다.
열정적인 강의 뿐 아니라 사랑과 기대로 저희 2기생들을 양육하신 목사님의
심정이 바로 주님의 심정, 참 아비의 심정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이
죄에 빠져 좌절하며 갈등하는 저희를 일으켜 세우곤 하였습니다. 지금 더욱
감격스럽게 기억되는 것은 저희를 향해 비전을 보여주시며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세계의 영혼들을 바로 우리에게맡기신 줄 믿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상가 3층에 자리잡은 작은 교회지만
목사님은 세계를 품고 계시고, 그 비전이 저의 비전이 되고, 또 우리 교회 성도
하나하나의비전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목사님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초지일관
고뇌하며 기도로서 모든 걸 감수하시고, 또 그 기도하신대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목사님이 하셨던 것처럼 초지일관 우직하고 충성스럽게
사명을 이루는 날까지달려나가는 것이 가장 큰 기도제목이며 소원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생을 마감하는 날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최선을 다해 달려 갔으며 생명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였노라”고 고백하는
제자가 되길 원합니다. 이 땅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를
주목하여 목동평강교회로 부르시고, 주님의 군사로, 셀리더로 불러주시며,
또 여러 성도님들과 만나 믿음의 교제를 하게 해 주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 주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제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동안 저를 양육해 주시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알게 하시며,
또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대해서, 몸소 보이시며 훈련시켜 주신 나의 스승이자
영적인 아버지이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허락하신 좋으신
나의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아멘

2008.4.13 세계비전제자대학 2기 졸업생 함병헌집사

Posted by 예빈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