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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슈바이처` 선우경식 박사 별세 & 꿈을 쫓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냥 주저리 주저리...

by 예빈아빠^^! 2008. 4. 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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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 슈바이처` 선우경식 박사 별세[조인스]
헐벗고 외롭고 술 취한 이들
가난한 나그네와 병든 이들이
쉬어 간 자리, 먹고 간 자리
영등포역 앞 어둑한 골목
요셉의원 안에는 자유가 있네.
지친 몸들을 어루만져주고
더러운 영(靈)들을 억누르는 힘 있네

- 조창환, <요셉의원>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린 요셉의원 선우경식(63) 원장이 18일 오전 4시 서울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21년 동안 극빈층과 노숙자에게 무료로 진료
 활동을 펼친 선우 원장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5일 뇌출혈을
일으킨지 3일 만이다.

1969년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한 선우 원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센터에서 내과학을 전공했다. 미국에서도 잘나가는 병원에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선우 원장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한림대 병원에서 잠시 근무
하던 그는 83년부터 당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료 의술 봉사를 했다. 당시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었던 그곳에서 선우 원장은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환자를 업고 다니며 자원봉사를 펼쳤다. 봉사활동을
이끌던 한 신부가 그에게 계속 남아 진료해 줄 것을 부탁했고, 그는 87년 8월
신림 1동에 무료 자선 병원인 요셉의원을 세웠다. ‘호의호식’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당시엔 전 국민 건강보험이 시행되기 전이라 빈민들은 아파도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의 병원은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개원
초기 운영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의료기구는 성모병원에서 쓰던 것을 얻어
와야 했다. 의약품을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한 한 회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나 선우 원장은 가난한 병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버텼다. 요셉의원은
97년 5월 영등포 역사 뒤편에 있는 쪽방촌으로 옮겨 왔다.

지금까지 42만 명의 영세민 환자와 노숙자, 외국인 근로자가 이 병원을 거쳐 갔다.
현재 요셉의원은 자원봉사에 나서 교대로 무료 진료를 해 주는 80명의 의사·간호
사와 일반 봉사자 600여 명이 꾸려 가고 있다. 매월 2000여 명의 후원자가 1
000원에서 몇 만원까지 보내 주는 기부금이 재정의 전부다.

선우 원장은 결혼도 하지 않았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61년 선친이 지은 작은 집에서
그대로 살아왔다. 미국에 사는 여동생들이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오라고
강권했지만 그는 “나는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선우 원장은 2003년 호암상(사회봉사 부문)을 받았다.

“폐인이 다된 사람이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취직이라도 해 바나나 한 봉지 사 들고 찾아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 맛을 알면 이 일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죠.”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주머니가 부르면 딴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주변에 말해 왔던 선우 원장은 의사자격증 하나만을 남긴 채
영면의 길을 행했다.

강기헌 기자


꿈을 꾸고, 꿈을 쫓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는 교수들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이 3년째 소설 창작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검은색 운동복 상의에 흰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돌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항간에는 그가 전용 제트기를 타고 등교한다는 말도 학생들 사이에서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바로 나이키의 공동 창업주인 필립 나이트였습니다.
성공한 경영인으로 꼽히는 그가 70세에 대학교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듣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젋은 시절 소망하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2004년 CEO에서 물러난 나이트는 자신이 나이키 CEO였다는 사실을 숨긴 채 무려
50년이나 젊은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었습니다.
나이트는 스탠퍼드대 영문학과 토비아스 울프교수에게 소설 쓰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나이트의 질문에 교수는 “기초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교수의 말에 따라 소설 창작 초급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좋아하는 그는 20년 전 집필을 시작했다가 완결 짓지 못한 소설도 요즘 부지런히
쓰고 있다고 합니다.
소설가 슈워즈 차일드는 소설 쓰는 법을 겸손하게 배우는 나이트의 모습은
일반 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작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 최고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나이트였지만,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백만장자지만 그에게도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자신이 소유한 재산의 크기는 물론 나이와 무관하다는
 것을 나이트는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나이트였기에 세계적인 경영인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좋은생각 2008년2월호 중에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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